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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요약
월스트리트저널을 펼쳤는데, 한국 국보가 나왔다. 그것도 경제면이 아니라 예술면(Arts)에서. 지난 6월 6일, WSJ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전시 '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를 호평 하는 리뷰를 실었다. https://www.wsj.com/arts-culture/fine-art/korean-national-treasures-2-000-years-of-art-review-a-cultures-high-points-deb78eb2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려청자, 6세기 금동삼존불, 그리고 한글로 인쇄된 최초의 불경까지. 미술사학자가 쓴 진지한 평론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가 걸린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쓴다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BTS와 '오징어 게임'이다. 그런데 WSJ가 다룬 건 대중문화가 아니라 정통 예술이다. 같은 'K'인데 범주가 어긋난다. 그리고 WSJ가 K팝을 다룰 때는 보통 연예면(Entertainment)에 싣지만, 이번 국보 전시는 예술면에 실렸다. 같은 매체 안에서도 지면의 위치가 다르다. 이 어긋남은 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의 출발점이다. 지면의 차이가 곧 무엇의 차이인지, 끝까지 따라가 보면 보인다. 그 미술품은 어디서 왔나 먼저 이 국보들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부터. 전시작 대부분은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컬렉션이다. 정확히는 부친 이병철부터 2대에 걸쳐 70여 년간 모은 수집품이고, 2021년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유족이 무려 2만 3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 가운데 22점이 그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한 가문의 취향이 '대한민국의 국보'로 격상된 것이다. 그런데 왜 기증했을까. 단순히 고인의 유지를 받든 미담으로만 보기엔, 그 시점과 구조가 흥미롭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세는 약 12조 원,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여기서 한국 세법의 한 가지 사정이 끼어든다. 2021년 당시 한국에는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방법, 즉 물납 제도가 없었다. 미술품이라는 자산은 가치 평가가 주관적이라 분쟁의 소지가 크고, 당장 현금화하기도 어렵다. 유족 입장에서 2만 3천 점은 '평가하기 까다롭고, 팔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상속재산에 넣으면 세금만 불어나는' 거대한 비유동 자산 덩어리였다. 그것을 기증으로 처리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상속재산에서 차감되어 절세 효과가 생기고, 동시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가문'이라는 평판과 국가의 공식 감사가 따라온다. 평가도 어렵고 팔기도 힘든 자산이 단번에 '품격'으로 환전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후일담 하나가 있다. 이 기증을 계기로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가 불붙었고, 2023년부터 실제로 시행됐다. 정작 기증한 본인들은 그 제도를 쓸 수 없었던 셈이다. '미술품 물납제' 2023년 시행…미술계, 환영 속 걱정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서믿음 기자] 10여년 간 미술계의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가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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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월스트리트저널을 펼쳤는데, 한국 국보가 나왔다. 그것도 경제면이 아니라 예술면(Arts)에서. 지난 6월 6일, WSJ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전시 '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를 호평 하는 리뷰를 실었다. https://www.wsj.com/arts-culture/fine-art/korean-national-treasures-2-000-years-of-art-review-a-cultures-high-points-deb78eb2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려청자, 6세기 금동삼존불, 그리고 한글로 인쇄된 최초의 불경까지. 미술사학자가 쓴 진지한 평론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가 걸린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쓴다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BTS와 '오징어 게임'이다. 그런데 WSJ가 다룬 건 대중문화가 아니라 정통 예술이다. 같은 'K'인데 범주가 어긋난다. 그리고 WSJ가 K팝을 다룰 때는 보통 연예면(Entertainment)에 싣지만, 이번 국보 전시는 예술면에 실렸다. 같은 매체 안에서도 지면의 위치가 다르다. 이 어긋남은 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의 출발점이다. 지면의 차이가 곧 무엇의 차이인지, 끝까지 따라가 보면 보인다. 그 미술품은 어디서 왔나 먼저 이 국보들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부터. 전시작 대부분은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컬렉션이다. 정확히는 부친 이병철부터 2대에 걸쳐 70여 년간 모은 수집품이고, 2021년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유족이 무려 2만 3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 가운데 22점이 그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한 가문의 취향이 '대한민국의 국보'로 격상된 것이다. 그런데 왜 기증했을까. 단순히 고인의 유지를 받든 미담으로만 보기엔, 그 시점과 구조가 흥미롭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세는 약 12조 원,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여기서 한국 세법의 한 가지 사정이 끼어든다. 2021년 당시 한국에는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방법, 즉 물납 제도가 없었다. 미술품이라는 자산은 가치 평가가 주관적이라 분쟁의 소지가 크고, 당장 현금화하기도 어렵다. 유족 입장에서 2만 3천 점은 '평가하기 까다롭고, 팔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상속재산에 넣으면 세금만 불어나는' 거대한 비유동 자산 덩어리였다. 그것을 기증으로 처리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상속재산에서 차감되어 절세 효과가 생기고, 동시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가문'이라는 평판과 국가의 공식 감사가 따라온다. 평가도 어렵고 팔기도 힘든 자산이 단번에 '품격'으로 환전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후일담 하나가 있다. 이 기증을 계기로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가 불붙었고, 2023년부터 실제로 시행됐다. 정작 기증한 본인들은 그 제도를 쓸 수 없었던 셈이다. '미술품 물납제' 2023년 시행…미술계, 환영 속 걱정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서믿음 기자] 10여년 간 미술계의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가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3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www.asiae.co.kr 왜 하필 시카고였을까 이제 장소다. 이 순회전은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거쳐,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정치 수도, 미국 제2의 도시, 그리고 한때 전 세계 문화재를 빨아들인 제국의 심장. 우연한 동선이 아니다. 특히 시카고에는 한국 근대사의 한 장면이 묻혀 있다. 1893년, 조선은 처음으로 공식적인 세계박람회 무대에 섰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였다. 고종은 망설인 끝에 이조 참의 정경원을 단장으로 임명했고, 통역관과 국악단원 10명을 포함한 13명의 사절단이 부산을 떠나 한 달 넘게 걸려 시카고에 닿았다. 그들은 박람회장 '제조·교양관' 한쪽에 작은 한옥 전시관을 세우고 가마, 관복, 부채, 짚신, 화승포 같은 물품 21종을 늘어놓았다. 그 풍경이 어땠는지는, 마침 그때 미국에 유학 중이던 윤치호의 평가에 남아 있다. 그는 박람회를 둘러보고, 관람객의 찬사를 받는 일본 전시관에 비해 조선의 출품은 빈약하기 그지없고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적었다. 조선인 스스로가 부끄러워했던 자리다. [조선의 전시관] https://www.straigh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146 사절단의 국악단원들은 개막일에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지나갈 때 잠깐 풍악을 울린 뒤, 경비를 아낀다는 이유로 단 이틀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그 시절 조선은 세계에 '은둔국의 이국적 구경거리' 정도로 비쳤다. 그리고 한 가지 인연이 더 있다. 그 1893년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 박람회가 끝난 직후 미술관으로 문을 연 것이 지금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본관이다. 조선의 전시품 자체는 박람회장의 다른 건물에 있었으니 '바로 그 자리'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같은 도시, 같은 박람회의 계보를 잇는 그 무대 위에서, 1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2,000년 문명의 국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온다. 빈약해서 부끄럽던 구경거리가, 미국 미술관이 정성껏 큐레이션하는 보물로 바뀌어서, 이보다 깔끔한 전후 대비를 일부러 설계하기도 쉽지 않다. K팝과 국보, 무엇이 무엇을 떠받치는가 이제 처음의 어긋남으로 돌아가자. K팝은 대중문화인데 왜 정통 예술이고, 왜 WSJ 예술면인가. 대중문화와 정통 예술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 안에서 서로 다른 일을 맡고 있을 뿐이다. 돈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르다. 한때 세계는 금본위제라는 제도 위에서 돌아갔다. 한 나라의 돈 가치를 금고에 쌓아둔 금으로 보증하던 방식이다. 우리가 쓰는 지폐는 그 자체로는 종잇조각이지만, 뒤에 금이 받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신뢰를 얻었다. 지폐는 활발히 돌아다니며 경제를 굴리고, 금은 움직이지 않고 뒤에서 그 신뢰를 떠받친다. 둘 중 무엇이 더 잘났는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K팝과 K드라마는 이 비유에서 '돌아다니는 돈'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매일 듣고 보고 따라 한다. 이렇게 활발히 유통된다는 건 한국 문화라는 경제가 그만큼 크고 살아 있다는 뜻이다. 가벼워서가 아니라, 많이 쓰이기 때문에 힘이 세다. 외국인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는 입구는 거의 다 여기다. 대중문화가 먼저 그 문을 열어젖히지 않았다면, 애초에 누구도 고려청자 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서로 보면 대중문화가 앞장을 선다. 국보는 그 돈을 뒤에서 보증하는 '금' 이다. 희소하고, 오래됐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가, 통화의 신뢰를 보여줘야 할 때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카고 전시가 바로 그 장면이다. 한국 문화라는 돈 뒤에는 2,000년의 금이 쌓여 있다"고 펼쳐 보이는 자리말이다. 왜 굳이 이걸 보여줄까. 빠르게 떠오른 문화일수록 '화려하긴 한데 뿌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신흥 문화 강국이 걸어온 길이 대개 비슷하다. 먼저 대중문화로 세계의 눈길을 끌고, 그다음 전통 예술을 꺼내 깊이를 증명한다. 일본이 우키요에로 19세기 유럽 화단을 흔들었던 것이나, 중국이 고대 청동기와 돈황 유물을 세계 박물관에 순회시키는 것도 같은 구조다. 한국은 지금 그 길의 한복판에 있다. 그래서 WSJ가 중요하다. WSJ는 연예 매체가 아니라 자본과 엘리트가 읽는 매체다. 거기서 K팝은 연예면에 실리지만 이건희 컬렉션은 예술면에 실린다. 어느 지면에 실리느냐가 곧 어떤 대접을 받느냐다. WSJ 예술면에 진지한 평론으로 다뤄졌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품질 보증서인 셈이다. 미국의 문화 엘리트가 이 금을 '진짜 금'으로 인정했다는 증표말이다. 무엇이 무엇을 보증하는가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거대한 기획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시카고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미국·영국 주요 박물관과 수년에 걸쳐 추진해온 '한국실 지원 사업'의 결실이고, 큐레이션은 시카고박물관의 한국 미술 큐레이터가 맡았다. 한 걸음씩 쌓인 행정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누가 큰 그림을 그린 게 아니다. 한 가문의 기증과, 국가의 문화 외교와, 박물관의 오랜 사업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다가 같은 방향으로 맞물렸을 뿐이다. 개인의 수집품이 국가의 국보가 되고, 그 국보가 다시 한국 문화 전체를 뒤에서 보증하는 금이 되는 긴 흐름. 그 끝에 시카고가 있다. 겸재 정선이 일흔여섯에 비 갠 인왕산을 그릴 때, 그는 이 그림이 270여 년 뒤 시카고에서 한 나라의 문화를 보증하는 금으로 걸릴 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자기가 자란 산을 그렸을 뿐이다. 가치는 그렇게, 만든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한참 뒤에 다른 무엇으로 환산된다. 우리가 지금 매일 발행하는 K-콘텐츠라는 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무엇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될까. 어쩌면 그 답은, 130여 년 전 부끄러워하며 귀국선에 올랐던 그 사절단이 미처 알지 못한 채 남겨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건희컬렉션 #국보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소프트파워 #문화자본 #K컬처 #금본위제 #삼성 #WSJ #투자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