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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블로그 bambooinvesting 2026.06.10 20:55

K팝의 나라는 왜 국보를 들고 시카고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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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요약

월스트리트저널을 펼쳤는데, 한국 국보가 나왔다. 그것도 경제면이 아니라 예술면(Arts)에서. ​ 지난 6월 6일, WSJ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전시 '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를 호평 하는 리뷰를 실었다. https://www.wsj.com/arts-culture/fine-art/korean-national-treasures-2-000-years-of-art-review-a-cultures-high-points-deb78eb2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려청자, 6세기 금동삼존불, 그리고 한글로 인쇄된 최초의 불경까지. ​ 미술사학자가 쓴 진지한 평론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가 걸린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쓴다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BTS와 '오징어 게임'이다. 그런데 WSJ가 다룬 건 대중문화가 아니라 정통 예술이다. 같은 'K'인데 범주가 어긋난다. 그리고 WSJ가 K팝을 다룰 때는 보통 연예면(Entertainment)에 싣지만, 이번 국보 전시는 예술면에 실렸다. 같은 매체 안에서도 지면의 위치가 다르다. ​ 이 어긋남은 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의 출발점이다. 지면의 차이가 곧 무엇의 차이인지, 끝까지 따라가 보면 보인다. ​ 그 미술품은 어디서 왔나 먼저 이 국보들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부터. 전시작 대부분은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컬렉션이다. 정확히는 부친 이병철부터 2대에 걸쳐 70여 년간 모은 수집품이고, 2021년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유족이 무려 2만 3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 가운데 22점이 그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한 가문의 취향이 '대한민국의 국보'로 격상된 것이다. ​ 그런데 왜 기증했을까. 단순히 고인의 유지를 받든 미담으로만 보기엔, 그 시점과 구조가 흥미롭다. ​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세는 약 12조 원,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여기서 한국 세법의 한 가지 사정이 끼어든다. 2021년 당시 한국에는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방법, 즉 물납 제도가 없었다. ​ 미술품이라는 자산은 가치 평가가 주관적이라 분쟁의 소지가 크고, 당장 현금화하기도 어렵다. 유족 입장에서 2만 3천 점은 '평가하기 까다롭고, 팔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상속재산에 넣으면 세금만 불어나는' 거대한 비유동 자산 덩어리였다. ​ 그것을 기증으로 처리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상속재산에서 차감되어 절세 효과가 생기고, 동시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가문'이라는 평판과 국가의 공식 감사가 따라온다. ​ 평가도 어렵고 팔기도 힘든 자산이 단번에 '품격'으로 환전되는 것이다. ​ 흥미로운 후일담 하나가 있다. 이 기증을 계기로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가 불붙었고, 2023년부터 실제로 시행됐다. 정작 기증한 본인들은 그 제도를 쓸 수 없었던 셈이다. '미술품 물납제' 2023년 시행…미술계, 환영 속 걱정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서믿음 기자] 10여년 간 미술계의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가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 ============================================================

📷 이미지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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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월스트리트저널을 펼쳤는데, 한국 국보가 나왔다. 그것도 경제면이 아니라 예술면(Arts)에서. ​ 지난 6월 6일, WSJ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전시 '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를 호평 하는 리뷰를 실었다. https://www.wsj.com/arts-culture/fine-art/korean-national-treasures-2-000-years-of-art-review-a-cultures-high-points-deb78eb2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려청자, 6세기 금동삼존불, 그리고 한글로 인쇄된 최초의 불경까지. ​ 미술사학자가 쓴 진지한 평론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가 걸린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쓴다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BTS와 '오징어 게임'이다. 그런데 WSJ가 다룬 건 대중문화가 아니라 정통 예술이다. 같은 'K'인데 범주가 어긋난다. 그리고 WSJ가 K팝을 다룰 때는 보통 연예면(Entertainment)에 싣지만, 이번 국보 전시는 예술면에 실렸다. 같은 매체 안에서도 지면의 위치가 다르다. ​ 이 어긋남은 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의 출발점이다. 지면의 차이가 곧 무엇의 차이인지, 끝까지 따라가 보면 보인다. ​ 그 미술품은 어디서 왔나 먼저 이 국보들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부터. 전시작 대부분은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컬렉션이다. 정확히는 부친 이병철부터 2대에 걸쳐 70여 년간 모은 수집품이고, 2021년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유족이 무려 2만 3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 가운데 22점이 그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한 가문의 취향이 '대한민국의 국보'로 격상된 것이다. ​ 그런데 왜 기증했을까. 단순히 고인의 유지를 받든 미담으로만 보기엔, 그 시점과 구조가 흥미롭다. ​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세는 약 12조 원,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여기서 한국 세법의 한 가지 사정이 끼어든다. 2021년 당시 한국에는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방법, 즉 물납 제도가 없었다. ​ 미술품이라는 자산은 가치 평가가 주관적이라 분쟁의 소지가 크고, 당장 현금화하기도 어렵다. 유족 입장에서 2만 3천 점은 '평가하기 까다롭고, 팔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상속재산에 넣으면 세금만 불어나는' 거대한 비유동 자산 덩어리였다. ​ 그것을 기증으로 처리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상속재산에서 차감되어 절세 효과가 생기고, 동시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가문'이라는 평판과 국가의 공식 감사가 따라온다. ​ 평가도 어렵고 팔기도 힘든 자산이 단번에 '품격'으로 환전되는 것이다. ​ 흥미로운 후일담 하나가 있다. 이 기증을 계기로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가 불붙었고, 2023년부터 실제로 시행됐다. 정작 기증한 본인들은 그 제도를 쓸 수 없었던 셈이다. '미술품 물납제' 2023년 시행…미술계, 환영 속 걱정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서믿음 기자] 10여년 간 미술계의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가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3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www.asiae.co.kr ​ 왜 하필 시카고였을까 이제 장소다. 이 순회전은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거쳐,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이어진다. ​ 미국의 정치 수도, 미국 제2의 도시, 그리고 한때 전 세계 문화재를 빨아들인 제국의 심장. 우연한 동선이 아니다. ​ 특히 시카고에는 한국 근대사의 한 장면이 묻혀 있다. 1893년, 조선은 처음으로 공식적인 세계박람회 무대에 섰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였다. ​ 고종은 망설인 끝에 이조 참의 정경원을 단장으로 임명했고, 통역관과 국악단원 10명을 포함한 13명의 사절단이 부산을 떠나 한 달 넘게 걸려 시카고에 닿았다. 그들은 박람회장 '제조·교양관' 한쪽에 작은 한옥 전시관을 세우고 가마, 관복, 부채, 짚신, 화승포 같은 물품 21종을 늘어놓았다. ​ 그 풍경이 어땠는지는, 마침 그때 미국에 유학 중이던 윤치호의 평가에 남아 있다. ​ 그는 박람회를 둘러보고, 관람객의 찬사를 받는 일본 전시관에 비해 조선의 출품은 빈약하기 그지없고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적었다. 조선인 스스로가 부끄러워했던 자리다. ​ [조선의 전시관] https://www.straigh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146 ​ 사절단의 국악단원들은 개막일에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지나갈 때 잠깐 풍악을 울린 뒤, 경비를 아낀다는 이유로 단 이틀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그 시절 조선은 세계에 '은둔국의 이국적 구경거리' 정도로 비쳤다. ​ 그리고 한 가지 인연이 더 있다. 그 1893년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 박람회가 끝난 직후 미술관으로 문을 연 것이 지금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본관이다. ​ 조선의 전시품 자체는 박람회장의 다른 건물에 있었으니 '바로 그 자리'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같은 도시, 같은 박람회의 계보를 잇는 그 무대 위에서, 1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2,000년 문명의 국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온다. ​ 빈약해서 부끄럽던 구경거리가, 미국 미술관이 정성껏 큐레이션하는 보물로 바뀌어서, 이보다 깔끔한 전후 대비를 일부러 설계하기도 쉽지 않다. ​ K팝과 국보, 무엇이 무엇을 떠받치는가 이제 처음의 어긋남으로 돌아가자. K팝은 대중문화인데 왜 정통 예술이고, 왜 WSJ 예술면인가. ​ 대중문화와 정통 예술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 안에서 서로 다른 일을 맡고 있을 뿐이다. 돈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르다. ​ 한때 세계는 금본위제라는 제도 위에서 돌아갔다. 한 나라의 돈 가치를 금고에 쌓아둔 금으로 보증하던 방식이다. 우리가 쓰는 지폐는 그 자체로는 종잇조각이지만, 뒤에 금이 받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신뢰를 얻었다. ​ 지폐는 활발히 돌아다니며 경제를 굴리고, 금은 움직이지 않고 뒤에서 그 신뢰를 떠받친다. 둘 중 무엇이 더 잘났는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 K팝과 K드라마는 이 비유에서 '돌아다니는 돈'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매일 듣고 보고 따라 한다. 이렇게 활발히 유통된다는 건 한국 문화라는 경제가 그만큼 크고 살아 있다는 뜻이다. ​ 가벼워서가 아니라, 많이 쓰이기 때문에 힘이 세다. 외국인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는 입구는 거의 다 여기다. 대중문화가 먼저 그 문을 열어젖히지 않았다면, 애초에 누구도 고려청자 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서로 보면 대중문화가 앞장을 선다. ​ 국보는 그 돈을 뒤에서 보증하는 '금' 이다. 희소하고, 오래됐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가, 통화의 신뢰를 보여줘야 할 때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카고 전시가 바로 그 장면이다. 한국 문화라는 돈 뒤에는 2,000년의 금이 쌓여 있다"고 펼쳐 보이는 자리말이다. ​ 왜 굳이 이걸 보여줄까. 빠르게 떠오른 문화일수록 '화려하긴 한데 뿌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신흥 문화 강국이 걸어온 길이 대개 비슷하다. ​ 먼저 대중문화로 세계의 눈길을 끌고, 그다음 전통 예술을 꺼내 깊이를 증명한다. ​ 일본이 우키요에로 19세기 유럽 화단을 흔들었던 것이나, 중국이 고대 청동기와 돈황 유물을 세계 박물관에 순회시키는 것도 같은 구조다. 한국은 지금 그 길의 한복판에 있다. ​ 그래서 WSJ가 중요하다. WSJ는 연예 매체가 아니라 자본과 엘리트가 읽는 매체다. ​ 거기서 K팝은 연예면에 실리지만 이건희 컬렉션은 예술면에 실린다. 어느 지면에 실리느냐가 곧 어떤 대접을 받느냐다. WSJ 예술면에 진지한 평론으로 다뤄졌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품질 보증서인 셈이다. 미국의 문화 엘리트가 이 금을 '진짜 금'으로 인정했다는 증표말이다. ​ 무엇이 무엇을 보증하는가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거대한 기획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시카고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미국·영국 주요 박물관과 수년에 걸쳐 추진해온 '한국실 지원 사업'의 결실이고, 큐레이션은 시카고박물관의 한국 미술 큐레이터가 맡았다. 한 걸음씩 쌓인 행정의 결과물이다. ​ 그러니 누가 큰 그림을 그린 게 아니다. 한 가문의 기증과, 국가의 문화 외교와, 박물관의 오랜 사업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다가 같은 방향으로 맞물렸을 뿐이다. ​ 개인의 수집품이 국가의 국보가 되고, 그 국보가 다시 한국 문화 전체를 뒤에서 보증하는 금이 되는 긴 흐름. 그 끝에 시카고가 있다. ​ 겸재 정선이 일흔여섯에 비 갠 인왕산을 그릴 때, 그는 이 그림이 270여 년 뒤 시카고에서 한 나라의 문화를 보증하는 금으로 걸릴 줄 몰랐을 것이다. ​ 그저 자기가 자란 산을 그렸을 뿐이다. 가치는 그렇게, 만든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한참 뒤에 다른 무엇으로 환산된다. ​ 우리가 지금 매일 발행하는 K-콘텐츠라는 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무엇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될까. 어쩌면 그 답은, 130여 년 전 부끄러워하며 귀국선에 올랐던 그 사절단이 미처 알지 못한 채 남겨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건희컬렉션 #국보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소프트파워 #문화자본 #K컬처 #금본위제 #삼성 #WSJ #투자인사이트